[출처: Reuters] 찰스 국왕은 1977년 웨일스의 왕자로서 캐나다를 방문해 원주민 정부 '카이나이 네이션(Kainai Nation)'으로부터 명예 부족장직을 수여받았다
[출처: Reuters] 찰스 국왕은 1977년 웨일스의 왕자로서 캐나다를 방문해 원주민 정부 ‘카이나이 네이션(Kainai Nation)’으로부터 명예 부족장직을 수여받았다

캐나다는 최근 몇 년 동안 원주민과의 화해에 힘썼다. 새로운 찰스 국왕의 즉위는 이 상황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올해 초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를 방문해 환영식에 참석한 찰스 국왕(당시 웨일스 공)은 사과 요청을 받았다.

사과를 요청한 것은 원주민 의회의 로즈앤 아치볼드 의장이다.

이제 찰스 국왕이 수장을 맡은 영국 성공회가 식민 지배 당시 기숙 학교를 운영해 원주민 아동에 대한 “동화 정책과 대량 학살”을 자행했으며 식민 지배 과정에서 왕실의 역할을 설명했고, 이에 대해 왕실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찰스 3세에게 전했다.

당시 3일간의 캐나다 방문은 찰스 3세의 19번째 공식 방문이자 웨일스 왕자로서 마지막 방문이었다.

찰스 3세는 그 자리에서 사과를 표하지 않았으나, 지난 역사의 “더 어둡고 더 복잡한 측면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새로운 국왕의 즉위가 왕실과 캐나다 원주민 간에 보다 긍정적인 관계를 쌓는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찰스 3세 국왕: 캐나다 원주민을 위한 ‘새로운 시작’

캐나다를 비롯한 전 세계 영연방 국가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한 지금 군주제의 역할을 고심 중이며 식민 지배를 반성하는 과정에서 찰스 국왕의 역할을 가늠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원주민과의 화해를 위해 전국적인 대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찰스 3세가 새 국왕으로 선포됐다.

화해 논의는 예전부터 진행돼 왔지만, 지난여름 원주민 부족이 과거 기숙 학교 부지에서 발견된 이름 없는 무덤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전면으로 부상했다.

해당 학교는 1800년대에 원주민 아동 동화 정책의 일환으로 설립됐으며 정부 지원 자금이 투입됐다.

캐나다가 생각하는 화해에는 매우 다양한 측면이 있다.

많은 이들은 국왕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 외에도 영국이 약탈한 원주민 문화재를 반환하고 군주국인 영국과 원주민 사이의 역사적 조약 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존중하도록 왕실에 요청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조약은 원주민 부족과 연방·지방 정부 사이의 권리 및 책임을 정한 것으로, 헌법에서 인정하는 협정이다.

왕실과 체결된 조약의 역사는 17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새로운 조약 협상은 화해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된다.

크리(Cree) 부족 출신 작가이자 조약 협상가로 활동했던 대럴 맥그로드는 이달 초 캐나다 신문 ‘글로브앤메일(Globe and Mail)’을 통해, 공식 사과부터 원주민 문화재 반환에 이르기까지 엘리자베스 여왕이 왕실의 이름으로 얼룩진 과거사를 반성할 다양한 방법이 있었으나 이를 활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맥그로드는 찰스 국왕이 “모친이 수행하지 못한 과업을 성취할 수 있는 통찰력과 결단력을 갖고, 캐나다에서 윈저 왕조에게 허락된 남은 시간을 관계 호전에 사용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캐나다는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전부터 군주제의 영향권에 있었다.

500여 년 전, 프랑스·영국 왕실 모두 캐나다 내 식민지를 통치했다. 왕실과 원주민의 역사는 유럽인들이 미주 대륙에 처음 발을 디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캐나다의 대초원에는 1800년대 왕실 조약의 상징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왕실은 약속을 인정하는 증표로 조인 후 ‘조약 메달’을 전달했다.

캐나다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서스캐처원 지역 원주민 단체 리틀파인(Little Pine)에 소속된 더그 컷핸드는 “조약에 서명한 모든 부족장이 한 면에 여왕의 초상이 있었는 메달을 받았고, 당시 캐나다에는 국기가 없었기 때문에 영국 국기 ‘유니언잭’도 받았다”라고 말한다.

지금은 왕실이 아닌 연방 정부가 협정에 대한 권한을 가졌으나, 왕실과 원주민의 관계는 여전히 상징성을 띤다. 컷핸드는 해당 지역의 원주민 모임에서 아직도 유니언잭이 흔히 보인다는 사실이 이러한 협정의 중요성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출처: Getty Images] 메리 사이먼 캐나다 총독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만남
[출처: Getty Images] 메리 사이먼 캐나다 총독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만남

캐나다는 영국 국왕이 국가 원수로 인정되는 15개국 중 하나로, 메리 사이먼 캐나다 총독이 캐나다 내에서 왕실을 대리한다. 총독은 이누크(Inuk) 부족 여성으로, 총독 자리에 앉은 첫 원주민이다.

북쪽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집집마다 걸려 있던 여왕의 초상화를 떠올린다. 총독은 이달 초 BBC의 리세 두셋 수석국제특파원에게 “북극 지방의 이누이트 부족은 여왕을 존경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왕실을 향해 분노하는 목소리도 있다. 작년 캐나다 매니토바주에서는 기숙 학교 부지의 이름 없는 무덤에 항의를 진행하던 가운데 빅토리아 여왕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동상이 무너졌다.

컷랜드는 원주민들이 식민 지배의 상처를 인지하는 동시에 오랜 유대 관계를 기억한다고 설명한다.

“좀 모순적이죠? 그런 식으로 상위 관계가 형성된 다음 조약 체결과 식민 지배가 뒤따랐습니다.”

캐나다 왕실연구소의 네이선 티드리지 부소장은 1867년 캐나다가 국가를 이뤘을 때 왕실과 원주민 사이의 기존 관계가 퇴색되고 정치권력과 각종 조약이 연방 정부의 통제하로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당시 왕실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은 연방 정부는 기숙학교 등 탄압 정책을 감독했다.

캐나다의 많은 원주민은 찰스 국왕이 국가원수의 상징성만을 유지하고 캐나다 정치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화해 과정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캐나다 매니토바 대학에서 원주민학을 연구하는 니가안 싱클레어 교수는 “모든 상황이 원주민 문제에 있어 엘리자베스 여왕보다 더 유능하고 적극적인 국왕의 등장을 가리킨다”라고 설명한다.

교수는 “불의가 발생했을 때 단순히 듣기 좋은 말로 무마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할 군주가 필요하다”라며, “총리의 말에 귀 기울이고 ‘왕실이 서명한 조약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라고 말할 군주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찰스 국왕은 당시 웨일스의 왕자로서 여왕 즉위 70주년을 기념해 캐나다를 방문한 자리에서 디타(Dettah) 부족의 에드워드 상그리스 부족장과 함께 불피우기(Feeding the Fire) 의식에 참여했다.

찰스 국왕은 최근 총독에게 화해에 힘쓰겠다는 뜻을 밝혔다. 티드리즈 부소장은 사이먼 총독과 같은 캐나다의 왕실 대리인을 통해 화해가 진척을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

여왕 즉위 70주년 기념 방문에서 찰스 3세의 사과는 없었지만, 티드리즈 부소장은 언젠가 국왕이 캐나다를 방문해 아치볼드 부족장의 사과 요구에 응할 것으로 생각한다.

“짧은 순방 일정에서 대뜸 사과를 건넬 수는 없지요. 시간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왕실은 수천 년의 역사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찰스 3세는 그 역사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국왕으로서 모친이 수행하지 못한 과업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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