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Getty Images] 올해 11월로 예정된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유력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출처: Getty Images] 올해 11월로 예정된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유력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브라질에 사는 주앙 비토르 곤잘레스 데 올리베이라(20)는 지난 8월 손꼽아 기다리던 2022 FIFA 월드컵 기념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 티셔츠가 출시되자 구매를 서둘렀다.

가장 가까운 상점으로 달려가 노란색과 초록색으로 이뤄진 유니폼 티셔츠를 집어 들었다. 계산대에 가져가니 가게 주인이 커다란 미소로 올리베이라를 맞이했다고 한다.

올리베이라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가게 주인은 내가 유니폼 티셔츠를 산다는 이유로 현 정부 지지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대편인 룰라 후보에 대한 욕을 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브라질에선 오는 10월 2일 대선이 치러질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선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과 좌파 성향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 대결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가게 주인의 짐작과는 달리 올리베이라는 현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는 자신이 유니폼 티셔츠를 사는 행동이 정부에 대한 지지로 보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가게 주인과 싸우고 싶지 않았기에 올리베이라는 그냥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지지하는 척했다.

펠레, 호날두 등 여러 뛰어난 브라질 출신 축구선수들 덕에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진 브라질의 ‘노란 축구 유니폼 티셔츠’는 어쩌다 분열된 국가의 상징이 됐을까.

이에 대해 마테우스 감바 토레스 브라질리아대 역사학과 교수는 “2014년부터 유니폼 티셔츠에 정치적 의미가 물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8년 전, 브라질 국기의 색인 노란색과 초록색 차림을 한 국민 수백만 명이 당시 대통령이었던 지우마 호세프에게 항의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호세프 전 대통령은 좌파 성향 인사다.

그 후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2018년 치러진 대선에서 보우소나루 후보는 국기 색을 활용한 선거 캠페인을 펼쳤다.

올해 선거에도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초록색과 노란색, 파란색 등을 주요 색상으로 이용하며, 국기가 그려진 티셔츠나 액세서리 등을 착용한다.

토레스 교수는 “초록색과 노란색으로 된 (축구 유니폼) 셔츠는 보우소나루 정부 지지자들의 상징이 됐다”면서 “이는 이 유니폼 티셔츠에 더 이상 동질감을 느끼지 않는 브라질 국민도 많아졌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출처: Reuters] 북부 마나우스에서 브라질 국기가 띄워진 스크린 앞에서 유세하는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
[출처: Reuters] 북부 마나우스에서 브라질 국기가 띄워진 스크린 앞에서 유세하는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

한편 올리베이라는 정치에 관해선 좀처럼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 유니폼 가게 주인과의 만남 때문만은 아니다. 브라질에선 정치적 논쟁이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룰라 후보가 속한 노동자당(PT당)의 당원이었던 마르셀로 알로이시오 데 아루다가 자신의 50번째 생일 파티에서 보우소나루 후보의 지지자인 것으로 알려진 어느 경찰관의 총에 맞아 숨지는 일이 있었다.

아루다는 사망하기 전 총을 꺼내 반격했으며, 이에 총상을 입은 경찰관은 병원에서 치료받은 뒤 수감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또한 지난 9일에는 베네디토 카르도소 도스 산토스(44)라는 시민이 과열된 정치 논쟁 끝에 동료의 손에 살해당하는 일이 있었다. 22세인 이 살인 용의자는 현재 경찰이 구금한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브라질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후이 아라우조 소우자 주니어(43)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보우소나루 지지자로 오해받고 싶지 않다며 유니폼 티셔츠는 집안에서만 입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룰라 전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유니폼 티셔츠가 “다시 한번 브라질을 단결시키며, 특정 정당이 아닌 진정한 조국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게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룰라 후보 또한 국기를 “되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가수 루드밀라, 브라질 최초의 그래미상 수상자인 아니타, 래퍼 종가 등 룰라 후보 지지자로 알려진 유명인들은 공연 도중 유니폼 티셔츠를 입자고 강조하기도 했다.

‘나이키’의 공식 브라질의 공식 월드컵 기념품 캠페인에 함께 하고 있는 래퍼 종가는 콘서트 도중 관중에게 공개적으로 유니폼 티셔츠를 입는 건 항의의 뜻을 담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들(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은 모든 것이 자신들의 것으로 생각한다”며 말문을 연 종가는 “가족의 의미, 브라질의 국가 등 모든 것을 전용하려고 든다. 그러나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며, 저들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게 진실”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보우소나루 후보에 반대하는 사람들만이 유니폼 티셔츠를 입기 조심스러운 것은 아니다.

자신을 보우소나루 후보의 지지자라고 밝힌 알렉산드라 파소스(41)는 “나는 애국자이자 우파다. 노란 유니폼 티셔츠를 입고 투표장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권자들 간 긴장이 악화하면서 “투표장에 입고 가기 두렵다”는 것이다.

[출처: Getty Images] 이번 달 가나와의 친선 경기에서 득점 세레모니를 하는 히샬리송 선수
[출처: Getty Images] 이번 달 가나와의 친선 경기에서 득점 세레모니를 하는 히샬리송 선수

한편 이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출전하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들은 유니폼의 정치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에 대해 브라질의 국가대표이자 토트넘 홋스퍼 FC에서 뛰고 있는 히샬리송 선수는 유니폼 티셔츠가 정치화되면서 브라질 국민들이 유니폼 티셔츠와 브라질 국기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니폼에 스며든 정치적 의미가 브라질이라는 국가에서 함께 공유하는 정체성의 일부를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히샬리송 선수는 “나는 브라질의 국민으로서 그리고 브라질 축구의 팬이자 선수로서 브라질 국기와 유니폼에 대해 우리가 지닌 동질성을 전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모두가 브라질 국민들이고 [무엇보다도] 모두에게 브라질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한편 이번에 나이키가 새롭게 출시한 유니폼 티셔츠 광고 캠페인은 정치적인 색깔 대신 유대감과 일체감에 초점을 맞췄다. 나이키는 광고에서 유니폼 티셔츠에 대해 “집단에 관한 것이며, 2억1000만 브라질 국민을 대표하는 것. 우리의 것”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나이키가 자사 상품에 정치 및 종교적 의미를 담은 커스터마이징을 금지했음에도 출시 몇 시간 만에 매진되는 등 파란색으로 된 원정 유니폼 티셔츠를 향한 인기가 높다.

[출처: Reuters] 지난 28일 튀니지와의 친선경기에서 득점한 페드루 선수. 새로운 파란색 유니폼을 입었다
[출처: Reuters] 지난 28일 튀니지와의 친선경기에서 득점한 페드루 선수. 새로운 파란색 유니폼을 입었다

브라질에서 풋살 감독으로 활동하는 마테우스 로차(28) 또한 BBC와의 인터뷰에서 올해는 파란색 유니폼 티셔츠를 입기로 했다고 말했다.

“(유명한) 노란색 유니폼을 입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는 로차는 “입는다는 생각 자체에 거부감이 든다. 원래 갖고 있던 노란색 유니폼을 옷장에서 꺼내 보지도 않았다. 아깝기도 하다. 티셔츠 자체는 멋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로차는 친구나 동료들도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RIP(고이 잠드소서) 노란색 티셔츠여”라는 로차는 “브라질 국민들을 위해서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국가대표팀이 역대 6번째 월드컵 우승컵을 거머쥘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로차와 비슷한 생각인 이들도 많지만, 여전히 노란색 유니폼을 사랑하는 축구팬들도 많다.

노란색 유니폼을 지지하는 모임인 ‘초록색과 노란색 운동’ 단체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브라질 국민들이 노란색 유니폼을 돌려받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단체의 창립 회원인 루이즈 카르발호는 “노란색 유니폼 티셔츠는 이제 죽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이 셔츠가 정치적 이해 관계에 이용된 게 슬플 따름”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카르발호는 “노란색 티셔츠가 어떤 특정 정치인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노란색 유니폼이 지닌 의미는 바로 그 정반대(즉, 브라질 국민 모두를 대표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국가대표팀이 경기장에 들어서면 브라질인으로서 자부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10월 선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던, 언제나 그랬듯이 브라질 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이 열정이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집권하는 동안 그 의미가 덧붙여지면서 이 노란색 유니폼 티셔츠를 애국심의 상징으로 더욱 굳게 믿게 된 일부 보우소나루 후보 지지자들도 있다.

아드리아나 모라스 도 나시멘토(49)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보우소나루 정부 이전에는 애국심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전의 좌파 정부 시절엔 국기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대통령이 브라질을 사랑하고 이러한 가치를 수호해준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원래 나시멘토는 노란색 티셔츠를 축구 유니폼으로만 생각했으나, 이젠 국가에 대한 사랑이 담긴 상징으로 여긴다고 했다.

“만약 좌파가 이번 선거에서 이긴다면 브라질 국기는 다시 한번 사라질 것”이라는 나시멘토는 “좌파들 손에 깃발이 들려있는 걸 본 적이 있나? 없다. 하지만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승리할 것이기에 국기가 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브라질 대선이 일정 및 사회 담론 측면에서 FIFA 월드컵과 이렇게 긴밀히 연관되기는 처음이다.

한편 토레스 교수는 브라질 국민들이 유니폼 티셔츠를 정치와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니폼 티셔츠는 티셔츠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유니폼 티셔츠도 그 의미가 나름 있지만, 특정 정부나 정당을 대표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정부라는 건 떠오르기도 하고 저물기도 하는 존재이지만 우리 국가와 우리 국가대표팀은 영원히 존재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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